무리수는 존재한다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기원전 5세기경 피타고라스학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정수와 분수(유리수)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해

모든 것의 경계와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유리수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그들의 신념이 무너진 것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지만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수스(Hippasus)가 유리수로

나타낼 수 없는 수, 즉 무리수가 있다며 대중에게 비밀을 폭로합니다.


히파수스의 배신에 대한 보복으로 피타고라스학파는 그를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였습니다.


무리수의 개념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웁니다.

여기에는 히파수스의 죽음이라는 일화가 늘 따라다닙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진실을 감추려 히파수스를 죽였지만, 무리수는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


2000년 전 유대인은 하나님이 오시길 소망했지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핍박하고 적그리스도로 정죄하여 결국 잔인한 십자가 공개처형을 받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핍박 속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역사는 찬란하게 이어져

지금도 존재합니다.







오늘의 요리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보조 : 안녕하세요. 건강한 인생을 책임지는 보조 요리사 천사입니다.

        제 옆에는 어떤 재료든 천국의 맛으로 끌어올리시는 인생 요리의 달인, 주님을 모시고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준비하셨나요?

주님 : 오늘은 천상의 맛, ‘구원’을 준비했습니다.

보조 : 이거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오늘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보겠습니다.


[재료로는 자기 인생 하나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보조 :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주님 : 제일 먼저 인생을 잘 씻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조 : 겉보기에는 흠 잡을 때 없이 깨끗한데요?

주님 : 목욕할 때를 생각해 봐요. 몸에 물을 붓기 전에는 더듬어 보고 눈으로 봐도 똑같이 부드러우니

        이게 살인지 때인지 구분이 안 되죠? 이와 같이 죄도 생활이라는 살과 붙어 있죠.

        고로 내 생활이 죄인지 의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물로 씻어보면 알게 되죠.

보조 : 회개가 먼저다 이 말씀이죠? 역시 요리의 핵심은 청결입니다.

주님 : 회개하다보면 묵었던 죄까지도 밀려 나오니 이번 기회에 100% 청결인생 되세요.


보조 : 재료 씻기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은데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요?

주님 : 다음으로 재료 손질을 해야 하는데요. 일명 가지치기라고 합니다.

보조 : 사람도 가지치기를 한다고요?

주님 : 인생마다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쓰기 가지,

        굳은 습관의 가지가 많아요. 인터넷 하다가 두세 시간 훌쩍 가고, 핸드폰 만지다가 하루 종일

        보고 있고, 기도시간에 잡생각 많이 하고, 새벽기도 하다보면 잠 잘 생각만 하고.

보조 : 전부 습관적으로 했던 일이네요.

주님 : 그 중에 제일 큰 가지가 바로 이런 말씀을 듣고도 충격적으로 듣지 못하는 가지,

        또 흘려버리는 가지.

        이 가지치기를 제일 먼저 해야 재료 손질을 더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보조 : 재료 손질만 했는데도 벌써 구원의 향기가 풍겨오네요.

주님 : 그만큼 기본만 해도 절반은 완성했다 할 수 있는 거죠.


보조 : 재료 준비가 다 끝난 다음에는 양념을 준비해야죠?

주님 :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주된 양념이 성령의 9가지 열매죠.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뿐 아니죠. 기도, 전도, 관리, 감사, 주와 소통, 생각, 행실, 말투, 성격...

보조 : 너무 많은 양념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 : 이런 양념은 요리에 더할수록 인생 맛에 풍미를 더하니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삶인데 얼마나 멋진 인생요리여야 되겠습니까.

보조 : 그렇다면 비율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사랑을 많이? 아니면 소통?

주님 : 신앙은 성적표처럼 한 가지만 잘해서는 전체 맛이 좌우되지 않아요.

        모든 신앙의 양념을 듬뿍듬뿍 뿌려야 구원의 맛이 올라갑니다.

보조 : 혹시 특별한 맛을 위한 팁은 없는지요?

주님 : 음, 이건 저만의 비밀인데 급할 때는 ‘하나님 부르기’ 100번쯤 톡톡 뿌려주고

         시간이 많을 땐 1000번쯤 뿌려주면, 둘이 먹다 둘이 하늘나라 올라가도 모를

         별미인생이 됩니다.

보조 : 대박! 특급 레시피 다들 들으셨죠? 잘 입력했다가 꼭 써먹어 보세요.


보조 : 이제 신앙의 양념이 잘 밴 인생을 구원의 때까지 잘 익히면 됩니다.

주님 :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데요.

       첫 신앙 때는 불이 활활 타올랐다가 어느 순간 사그라지면 지금까지 준비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첫 마음 꺼트리지 말고 끝까지 열을 내어 최고의 인생 만들기를 축복합니다. 

보조 : 마음의 불 꺼지지 않게 모두 끝까지 힘내세요.


보조 : 오늘 요리 레시피 어떠셨어요? 혼자는 힘들다고요? 걱정 마세요.

       인생의 달인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365일 24시간 항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할렐루야!

       손이 가요 손이 가~

       주님이 매일 찾고 싶은, 별점 일곱 개 인생 요리 꼭 만들어 보아요!






 

'배우고 행함'의 4가지 수준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어떤 일을 '배우고 익혀 행함'에 있어 그 '수준'을 4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하루는 자기 집 앞을 자전거를 타고 멋지게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전거를 타지 못 할 뿐 아니라 '자전거 타기'를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전거 타기에 관심을 갖고 자전거를 타고 싶어 '배워야 겠다' 의식을 하게 됩니다.

부모든 친구에게서든 자전거 타기를 배우면 수 차례 넘어서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드디어 탈 수 있게 되는데, 이 때는 오직 '자전거 타기'에 집중하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안 넘어지고 탈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전거 타기'에는 이제 고수가 되면 손 잡이에서 양손을 모두 떼고서도 잘 달릴 수 있게 됩니다.



이와같이 어떤 일을 배우고 익혀 실천함에 있어,


첫 번째 수준은 '할 수 없는 상태이면서 그 일에 대해 인식도 못 하는' 단계입니다.

이 수준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것은 해당 일에 대해 '감동'을 주어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전거 타기가 얼마나 멋진 일이며 충분히 짜릿함을 만끽 할 수 있다는...즉 '심장'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감동 주기)


두 번째 수준인 '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인식을 한' 단계입니다.

이 때에는 제대로 된 정보(말씀, 진리)를 전달 해 주면서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자전거 타기에 관련 된 지식으로 '두뇌'를 채우고, 혹 잘 못 된 정보는 바꿔 주어야 합니다.(뇌 고치기)


세 번째는 배우고 익혀 '할 수 있는데 집중한 상태(인식)에서 실행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 직접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몇 번 넘어져 고통을 느끼면 지속적 실천을 포기 할 수 있기에 꾸준히 실천하도록 관리 해 주는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지속적 실천)


마지막 네 번째는 충분히 익혀 '잘 할 수 있기에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도 실행을 하게 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네 번째 수준이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완성'의 단계임은 분명한데 문제는

이 네 번째 수준이 지속되어 버리면, '완성'에서 '기성화(旣成, Ready-made)' 되면서 현재 수준을 그저 유지만 하는 상태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를 '슬럼프(Slump)'라고 부릅니다.


혹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지루하고 곤고함을 느끼며 희망을 찾아 볼 수 없습니까?


그 일에 대해 미숙하고 완성이 안 되었기 보다 오히려 그 일에 대해 이미 너무 잘 하고 있고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지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금주 말씀에서도

"같은 수준에 오래 머물러 있을 때 지루하고 곤고하고 희망과 만족이 없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완성'의 수준이 오히려 다른 어떤 수준에 있을 때 보다 치명적인 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은 때인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나 세번째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넘어지고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와 부딪치거나 절벽에서 추락하는 등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사고의 경우는 거의 네 번째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발생 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슬럼프의 '한계' 그리고 '위험함'을 배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차원' 높이기 입니다.(차원 높이기)


이 전 칼럼에서도 누차 언급 했었된 대로 이 '차원 높이기'는 '기존성'에 대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 여태 않았던 새로운 실천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차원 높여 살려면 초가집을 허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전거 타기'의 수준을 높여 왔다면 이제 '자동차 운전'하기에 도전하는 것이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차원 높이기는 여태 해 왔던,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아 배우고 도전하며 지속적으로 실천을 해서 전혀 '다른 일'을 완성해 내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차원 높이기'가 힘든 것은 바로 이 전 수준에서 '완성' 되어 익숙하고 편한 상태 '기성'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고,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 했을 때에는 반드시 수반 되는 초기의 생산성 저하 현상이 존재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원을 높이는것이 무엇인지 개개인이 직접 맛을 보고 느껴 봐야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렵지만 '차원'을 높일 때 "보는 게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받고 누리는것도 달라지는 것" 이라고 정명석 목사께서는 강조하신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한계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가 닿을 수 있는 속도와 거리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일할 때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일을 할 때 그 받고 누리는것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이 역사는 월세살이에서 전세 살이, 전세살이에서 성전 건축으로 성전의 '수준' 높이기에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 그 기반들 위에 인구름이 차고 넘치게 하는 '생명의 역사'로 '차원'을 높이자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도 위에서 언급했던 '실행의 4가지 수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감동'으로 가슴 설레게 만들고, 말씀을 잘 전달 하여 '뇌를 고쳐' 주면서, '지속적 실천'을 통해 날로 그 수준과 '차원을 높일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수 많은 생명들이 모여 드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선 우리부터 더 배우고,깨닫고 오랫동안 실천을 하여 차원을 높임으로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실(Fact)'보다 '진실(Truth)' - 세푼칼럼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팀의 히딩크 감독이 기대이상의 결과에 들 떠 있는 대표선수들에게 '자만하지 말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국가대표 감독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기고 뭐하는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실제 '빵과 고기'를 들고 히딩크 감독을 찾아 온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목을 베자 잘린 머리는 금강산 꼭대기에 가 떨어졌고, 끊어진 목에서는 흰 젖과 같은 피가 솟았다. 하늘은 캄캄해지고 땅은 진동하는 데 꽃 비가 내렸다.'


이차돈(異次頓, 502?~527)이 순교하던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글입니다.


이 '사실(Fact)'을 두고 종교성을 강조하려고 '신화화(神話化)' 했다는 주장외에 척수액이 유출 되었을것이라거나, 비방(秘方)의 음식물 섭취로 인해 진짜 흰 피가 나오도록 했다는 설까지도 있다 합니다.


'사실'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이차돈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은 희생을 통해 원시 종교(신앙)에 굳어 져 있던 신라가 불교 국가로 탈바꿈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 되었고, 또 이것이 곧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진실(Truth)'입니다.


신라 당시의 시대상, 이차돈의 눈물 어린 수 많은 포교 활동들... 이런 방대한 '진실'을 단편적인 '순교 사건(사실)' 하나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미화(美化) 되고 신화화가 된 것입니다. 미화 되고 신화화 되면서 '압축'하는 데 당연히 '비유와 상징'등 문학적 기법이 사용 된 것이 아닐까요? 이 점에서 훗 날 해석상의 오류를 야기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판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듯이 '보이는 부분' 즉 '사실(문자, 외연, 표층)'은 '안 보이는 부분' 곧, '진실(맥락, 심연, 근본, 구조와 시대성)'의 지극히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문자 (text)' 보다 '맥락(context)'을 봐야 하는 것이고,

'사실(Fact)'보다 '진실(Truth)'을 확인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눈에 쉽게 띄고 '진실'은 얼른 알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 '진실'을 가려 구분 해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 여론이 극명하게 찬반 양단으로 분리 되어 상호 대결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도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기가 애매한 것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문자'와 '맥락','사실'과 '진실'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은 이 부분은 성경 해석이 중요한 기독교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 해야 하는 중요하면서 풀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2천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과연 네가 불과 구름에 옹위되어 하늘로부터 강림 했었느냐?' 그 사실(Fact) 여부를 따져 예수를 판단하고자 했습니다.


메시야 강림을 긴가민가 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도대체 뭘 보러 광야에 나갔었는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어떤 '사실')를 확인하려 했는가?"를 물으시고,


"와 보라!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얻고, 소경이 보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하셨습니다.


'구름'이라는 '문자'에 갇힌 사람들, 진짜 무덤에서 썩은 육신의 시체를 다시 살려 내는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메시야 강림에 대한 '문자'와 '사실'여부가 아닌 그 '맥락'과 '진실(Truth)'을 밝히시고자 하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금주 말씀을 통해 정명석 목사께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 신 목적(진실)이 무엇인지 다시 말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처럼 세상을 사랑하사...(요 3장16절)"

그 '사랑'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그 방법으로 친히 독생자, 메시야를 보내사 그 '육 과 영'의 운명을 걸고, 직접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이 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육으로 오신 메시야는 삶 가운데 성삼위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아들의 때에는 아들의 도리를, 신부의 때에는 신부의 도리를 하늘 앞에 다 하는 삶을 실천하고, 이를 또 시대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어 역시 그를 따라 그렇게 살게 만듦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의 창조목적을 이 땅에 온전히 다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것이 메시야 강림의 "본질, 진실"이며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일러 주신 것입니다.



혹, 아직도 '문자'에 갇혀 '빵과 고기'로 배 고픈 사람들을 먹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히딩크 감독에게 '빵 과 고기'를 갖다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차돈의 잘린 머리가 진짜 금강산 꼭대기까지 날아 갔는지, 정말 흘린 피의 색깔이 흰색 이었는지, 하늘에서 '꽃 비'가 내렸는지 그 '사실' 여부를 가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이제 와서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안 될 것입니다.


'문자'에 눈을 가리우고, '사실'여부를 따지느라 '진실'을 보지 못 하는 안타까운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의 말씀>이며
<메시아가 온 목적에 대한 표상의 말씀>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들’을 사랑해서
이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가르치는 최고 핵심의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36-40절 말씀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믿고,
메시아 최고의 가르침인 마태복음 22장 36~40절 말씀대로
마음과 뜻, 목숨을 다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사랑하고,
이와 같은 마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모두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실천함으로
<메시아가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며
인생 <태어난 목적>을 이루는

최고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남과대화






다정한 선배님, 정명석 목사를 이야기하는 장재완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그 당시에 어렵게 살 때도 정명석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는 그 시간만은 철저하게 아주 단장하고 가셨어요. 정명석 목사님은 단벌 신사였지만 넥타이를 다려서 입으셨어요. 그때는 다리미도 없는데 어떻게 입으시는지는 몰라도 깔끔하게 하고 교회에 나오시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은 주일날 예배보러 내려올 때 그 넥타이에 정장을 아주 말숙이 차려입고 내려오셨어요. 내려오시면서도 성경책을 딱 앞에다 거울처럼 이렇게 들고서 내려오시면서 성경을 읽는 그런 모습도 많이 봤습니다.

 


쉬실 때나 어디 조용한 곳에서 일하다가 조금 쉬는 틈에도 다른 사람들은 잡담이나 세상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지만 정명석 목사님은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모든 정성을 다해서 읽으시고, 전파하시는 그런 분으로 저희는 항상 보아왔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은 걸어 다닐 때도 틈만나면 성경책을 가지고 다녔어요. 항상 옆에 성경책을 두고, 앞에 두고 성경을 보고 성경말씀대로 전파하고..너무나 자신이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정명석 목사님의 생활이 어려운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금산에서 아프다고 하는 사람,  정신질환자들 이런 분들을 데리고 와서 머리도 감겨서 깔끔하게 해주시고 용모를 다듬어주시고 또 밥도 손수 해주셨어요. 가족들도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남한테 베푸는 그런 아주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베푸는 삶을 실천하는 김주형 집사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저는 기독교복음선교회 김주형 집사입니다. 제가 말씀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84년도 고려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아! 정말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 말씀을 듣고 인생은 가치가 있고 말씀이 귀하게 다가와서 다시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또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힘들어도 어려운 자이지만 한명 한명 끝까지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대해줘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런 마음으로 대하니깐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 사랑 때문에 더 변화되고 그런 모습을 보게 되요. 그래서 저도 기뻐요.


정말 이런 말씀을 전해주시는 정명석 목사님. 저희는 그때 당시 선생님이라고 불렀었는데요. ‘아~이런 귀한 말씀을 전해주시는 정명석 목사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이렇게 생각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명석 목사께서 월명동 개발하실 때 월명동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월명동에 갔을 때가 신년 초라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정명석 목사님께서 일일이 그 많은 사람에게 떡국을 한명 한명씩 다 퍼서 나누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아~정말 그 많은 사람에게 다 나누어주시려면 팔도 아프시지 않을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챙겨주시는 것을 보고 대개 저희하고 가깝게 느껴졌어요.

 


“말씀만 전하시는 분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저희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시는..실천하시는 분이구나”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랑으로 한명 한명 챙겨주시는 정명석 목사님의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선생님과 같이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행위가 바른 것 같아도,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행위가 바른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치 못한 것들이 많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남과대화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인간의 무지>는 ‘두 가지’다.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인간의 무지>는 ‘두 가지’다.

‘모르는 무지’가 있고, ‘알았는데 잊어버린 무지’가 있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남과대화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인생을 경영해야 존재하듯이,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자기 인생을 경영해야 존재하듯이,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과 영의 세계와 영들을 경영하셔야

인생들이 존재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남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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