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자기 뇌의 인식대로 좋아하고 싫어한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면, 사탄과 불의한 자들은 꾀어서 <나쁜 것>을 주고 바꾸게 하여 빼앗아 간다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말 씀] 정명석 목사


[본 문]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6장 9-10절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사람들이 몰라서 실패하고, 알아도 행하지 않아서 실패하니
행하도록 이해되게 가르쳐 주는 설교였고,
행하라고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제사장과 서기관이 가르치는 것 같지 않고,
그 말씀이 정말 좋다고, 권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늘의 해, 달, 별을 따다 줄 권세 있는 말씀>을 해 줘도
‘체질’이 몸에 배고 뇌에 굳은‘인식관’이 있으면
<다른 좋은 것>을 줘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체질, 자기 인식에 있는 것>을 선택하고 좋아합니다.



저마다 <자기가 아는 차원>대로, <자기 뇌의 인식>대로
보고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고 좋아하고 선택합니다.



<옷>을 선택할 때도, <자동차>를 선택할 때도,
<각종 작품>을 선택할 때도, <사람>을 선택할 때도
<자기 차원>대로, <자기 뇌의 인식>대로



<더 좋은 것>을 말해 줘도 자기는 안 좋다고 합니다.

<자기 차원>대로, <자기 뇌의 인식>대로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뇌의 인식을 온전히 하여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정명석 목사의 설교말씀ⓒ 만남과대화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때를 지키는 자>는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때를 지키는 자>는

‘음식이 제맛이 날 때 먹는 자’와 같아서,

인생 맛있게 산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남과대화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좋을 때만 귀하게 살면 손해다.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좋을 때만 귀하게 살면 손해다.

어렵고 힘들 때도 자기 삶을 귀하게 살아야 된다.




정명석 목사의 한줄멘토@ 만남과대화





순간의 운명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순간

찰나

망설

망설

주저

주저




순간

찰나

벌떡

퍼뜩

번뜩

얼른




순간

찰나

선택

으로

하루

에서

천년

까지

운명

내게

있다






깊은 기도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오늘 세탁할 옷들을 살피다 나온 두 친구,

동그라미와 네모를 환영하며 다리미판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그만 나의 실수로 동그란 친구가 버리려던 쓰레기 봉지에 쏙 빠져버렸다.




청소기 필터에서 나온 먼지들이 가득한 쓰레기 봉지였는데, 바닥까지 떨어졌는지

순식간에 보이지도 않았다. 난 이 먼지 더미를 헤집어서 이 친구를 구해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이 친구를 찾으려고 먼지 더미를 들썩이다 내 코와 입속으로 미세먼지가 들어갈 걸 생각하니

영 불쾌해져 인상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그 작은 동그라미가 보이기조차 않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저걸 다 뒤엎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그 순간

"너의 작은 의도 쉽게 포기하려느냐?"

하는 느낌이 막대기 같은 문장으로 내 뒤통수를 탁 때렸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땅 판다고 거저 생기란 법이 없는 이 귀한 걸 순간 손이 더러워질까 봐 포기하려 하다니.

이 동그란 친구가 요즘 워낙 존재감이 없긴 하지만, 전과 달라진 나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내 뇌에선 작은 비상벨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인생 살며 하나님 앞에 큰 의를 행한 것이 없는듯한데

그나마 행한 의를 까먹는 행동을 아무 생각 없이 서슴없이 하는 건 아닌지,

내 머릿속을 진단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지갑 속 이 동그라미 친구들을 소홀히 대하고 있어 경제에 비상 신호가 오려나?

아니면 바쁘다고 소홀히 하고 있거나 잘하고 있기에 아예 필요 없다 결론지은 것은 없는가?

나의 동그라미 친구들이 어딘가 또 있을 것만 같았다.




순간, 찰나에 벌어진 일이지만 왠지 식은땀이 났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이고, 의가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써먹지 않으면

세상에 남기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데 멀쩡히 있는 것조차 귀찮다는 이유로 포기하려는 나의 정신 상태는 비상사태에 해당된다.




다행히 먼지 뭉치를 밀치고 동그란 친구를 쉽게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저 꼬깃꼬깃한 네모 친구를 발견했을 때 난 어떠했던가? 환희의 빛으로 물들었다면 과장이고,

배시시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었다.

'구겨진 모습조차 귀엽구나' 하면서.

그래서 다리미판에서 멋지게 맵시를 뽐내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그래 봐야 네모 친구와 동그라미 친구의 차이는 999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은하 철도 999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차이가 크다면 크지만 작다면 작다는 얘기다.

그러다 '동그라미 친구를 버리면 네모 친구도 버릴 수가 있겠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대는 나의 뇌는 어느새 저 네모 친구처럼 꼬깃꼬깃해졌다.

아~ 은하철도 999처럼 끝도 없는 여행은 사절이다.




오늘 울린 비상벨 소리를 듣고 역시 기도로 점검에 들어가야겠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고 말한 누군가처럼 하나님은 나의 깊은 기도가 고프신 것 같다.

비상이다!





솔직하게 말해요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15년 전쯤

우리나라에 스타벅스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한 동생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 스타벅스 알아요?"

라는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사는 곳엔 스타벅스가 없었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그런데 그때 동생에게 모른다고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내 대답은




"응~ 알지. 스타들 키우는 곳이잖아”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동생은 어이없다는 듯

"언니, 스타벅스는 비싼 커피숍인데요?"




나는 민망해하며

"어 진짜? 나는 스타들 키우는 어디 기획사 말하는 줄 알았어."

그 당시 기획사 중에 스타00이라는 이름이 많았던 터라 그렇게 둘러댔다.




그냥 모른다고 할 걸.

들어보지도 못한 스타벅스였는데 왜 그땐 아는 척하고 싶었을까?




한참 나이 어린 동생에게 몰라도 아는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했거나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대할 때 내가 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때 모르는 걸 아는 척한 것이 너무 부끄러워 그 후로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꽃 선생 벌 선생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 여기저기 꽃이 많이 피어있다.

그중 꽃 이름을 아는 것도 있고 이름은 모르지만 늘 정겹게 보는 꽃들도 있다.

너무 예뻐 저 꽃 이름은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황금 낮 달맞이꽃이었다.

달맞이꽃은 주로 달을 맞이하며 밤에 피어 아침이 되면 꽃봉오리가 모아지는데,

황금 낮 달맞이는 달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 피어서 해를 맞이하는 꽃으로

색깔도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등 다양하다.




하루는 황금 낮 달맞이꽃들에 붕붕 날아다니는 벌들을 보게 되었다.

엄지보다 작은 몸으로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꽃가루 채집에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벌은 발에만 꽃가루를 묻힌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까지 온몸에 노란 꽃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너 참 부지런히 살구나’

‘너희 집은 어디니? 그 꽃가루로 뭘 하는 거야?’




작은 몸에 묻힌 꽃가루가 무겁지도 않은지,

벌은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꽃에 작업을 해대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꽃을 보면서, 그 꽃에 있는 벌을 보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다.




『벌이 꽃가루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다니듯,

  나도 진리의 꽃가루를 여기저기 퍼뜨리며 다녀야겠구나.

  황금 낮 달맞이꽃이 해를 맞이하여 피듯이

  내 인생도 황금 낮같은 주님을 늘 맞이하여야겠구나.

  짧게 피는 꽃이지만 내 인생의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겠구나.

  진리의 해가 늘 비치고 있으니, 나는 지지 않는 꽃이로구나.

  오늘은 하나님께서 꽃과 벌을 선생삼아 나를 깨우쳐주시는구나.』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 아래 그렇게 꽃은 피고 벌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존재하는 걸까?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우연히 보게 된 TV에선 혼자 사는 연예인이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자꾸만 쌓이는 짐을 버리려다 '어딘가 쓸데가 있겠지.'하며 다시 집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은 버려도 된대요."

지켜보던 한 패널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우리 집 문 앞에 일 년 넘게 세워져 있는 첫째의 자전거.

'언젠간 타겠지' 라는 생각에 버리지 못한 대표적 물건이다.




존재해도 안 쓰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 집에 있는 수없이 많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

나는 존재하고 있는 걸까?

팔다리가 없는 <오체 불만족>의 저자를 떠올리며 내 팔다리의 존재 여부가 의심스러워진다.




바로 앞의 휴지를 갖고 오기 싫어하는 우리 아들의 손은 존재하는 걸까?

목이 마른 데 물을 가지러 가기 귀찮은 내 다리는 존재하는 걸까?




누구든지 자기 몸은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안 쓰면, 몸이 없는 것과 같다.

나는 <부끄러운 오체 불만족>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휴지를 잡으며 내 손은 존재하게 되고, 냉장고로 걸어가며 내 다리는 존재하기 시작한다.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내 뇌는 존재하기 시작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기 시작하며

내 몸은, 내 삶은 존재하기 시작하는 거겠지.




이제, 존재하는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더 사랑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사랑'과 '사랑하며 사는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이 나이에도 차비를 받고

올 때가 종종 있다. 큰딸 사랑하는 아빠 마음이라 여기며 차비 쓰라 주시는 돈을

"히잉~ 아빠 고마워요." 하고 넙죽 받는데 익숙한 나다.



그런데 부모님 챙기는 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무슨 허례허식인 양 소홀하기 일쑤다.

'사랑하는 사이에 무슨 형식이 이리 많담' 하고 말이다.



지난 5월 황금연휴 때도 나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다 큰 아이들 스케줄에 맞춰 식사 약속을 잡다 보니 부모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이렇게 늘 기다리셨겠구나.'



늘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 댁을 찾는 약속을 고무줄 당기듯 변경하기 일쑤였다.

대식구라 나 하나쯤 늦어도 행사는 진행된다고 생각한 철없던 지난날이 후회된다.



뒤늦게야 어버이날 저녁,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내려가니 부모님은 반가워 화색이 돈 얼굴로

뛰어나오신다. 이웃에 사는 동생의 생일을 겸해 케잌을 사간 나는 멋쩍지만, 동생과 함께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불러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주말에 다른 형제들이 가져온 많은 카네이션 중 하나를 머리에 꽂고 신나 하셨고,

아빠도 박수치며 좋아라 재촉하신다.

나이 들어 더 어린애처럼 감정표현을 잘하시게 된 부모님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리 쉬운 걸 선물만 보내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니.



역시 자매 듀엣의 노래는 부모님께 감동을 줬고 나는 또 용돈을 받았다.

"아빠가 저를 이리 키우셔서 제가 버릇이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죄송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노년을 건강하게 여유를 누리며 사시는 부모님 덕분에 아직도 철이 안 든 나는 '사랑'과

'사랑하며 사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해 봐야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한 말씀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다.



하늘도 부모도 의무적인 사랑으로 대하지 말고 정말 뜨겁게 더 사랑하고픈 5월이, 벌써 다 지나간다.



"사랑을 받는 자보다 사랑을 하는 자가 더 기쁘고 복 있는 자다."라고 했다.



철없이 부모가 되어 철없는 자녀 노릇을 못 벗어나던 나.

이제야 마지막 남은 한때를 남겨두며 간절함에 사무친다








좁은 자취방 by 정명석목사와 만대






대학 다닐 때였다.

친한 친구가 학교 바로 앞에 자취방이 있다면서 놀러 오라고 했다.

친구의 자취방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친구를 따라갔다.




친구를 따라 어떤 건물 2층에 가니 ‘여성전용’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간판 왼쪽으로 긴 복도 양쪽으로 문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친구는 중간쯤에 서서는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어 방문을 열었다.




간판에 가리어져 반만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하나,

그리고 한 명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비좁은 침대,

식탁 겸 책상 겸 화장대 겸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여기 좁지 않아?”

“뭐 잠만 자고 바로 나가니까 그렇게 불편한 것은 없어.”

“네 명이 정자세로 앉아있으면 꽉 차겠다.”

“그래도 햇볕은 들어오잖아. 저번 달까지 창문 없는 곳에 있다가 옮긴 거야.”

“너 진짜 고생한다.”




나는 내가 얼마나 감사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금방 날아가고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친구에게 과자 들고 자주 놀러 오겠다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친구를 본다며 시골에서 친구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친구가 대학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오셨다고 했다.

친구는 아버지를 모시고 자취방을 보여드렸다.




방문을 열고 방을 살피자마자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셨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냐. 어떻게 여기서 잔단 말이야!”

“아빠, 나 아무렇지 않아.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당장 짐부터 싸. 네가 뭐가 아쉽다고 이런 데 있어!”

아버지는 친구가 그런 곳에 지내는 것이 자신 탓 같아서 더 한탄해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묘한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친구 불쌍하다. 잘해줘야지.’ 생각했고,

그 친구의 아버지는 방을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셨지...

어쩜 반응이 이리도 다를까?’




진정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다른 것 같다.

나는 그곳에서 여전히 나의 삶을 살아갔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딸의 삶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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